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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Door Life/후기 이야기

문무대왕릉을 다녀오고서~


신라의 땅 경주에 수학여행을? 제대로 갔다온 것 같다.

경주에 가기 전 꼭 들러야 겠다고 생각한 여러곳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문무대왕릉을 다녀온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사실 처음 문무대왕릉에 간다고 했을때 그냥 그러려니..
왕릉이려니 하는 생각이었는데, 실제 문무대왕릉에
다달아서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네비게이션에 분명 "문무대왕릉" 이라고 입력하였는데,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라고 했을 때
주변에 보이는 것은 "봉길 해수욕장" 이라는 바닷가였기 때문이다.

Daum 지도에서 문무대왕릉을 찾아보아도.. 마찬가지.... 자세히 보니 신기하게도 바다 위에
문무대왕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무왕은 신라 30대 왕이엿으며, 그의 무덤은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 이였던 것이였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통치를 위한 5소경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혀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와 같이 문무대왕릉을 소개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가 찾아간 문무대왕릉을 보기 위해서는 해수욕장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주차료가 너무 비쌌다 ㅠ.,ㅠ 문화재를 보러 온 것이였는데, 해수욕장 입장료를 받다니..
그래서 문무대왕릉을 둘러보는 내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실제로 문무대왕릉에 가보면, 그냥 해수욕장 앞 바다에 별 다를것 없는 무인도가 하나 있다. 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던 신라인들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국가였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문무대왕릉 관람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주차료!
정말 화가 났다. 문화재를 보려고 해수욕장 하루 주차장 비를 모두 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