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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Door Life/후기 이야기

선덕여왕릉을 다녀오고서.. 지덕을 겸비한 신라 최초의 여왕 왕릉


요즘 한창 드라마 '선덕여왕' 이 인기이다.

이전에 포스트했던 피가 솟고 비석이 나오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나정"은 어디?  포스트를 통해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의 방문 후기와 더불어 이번에는 지혜와 덕을 겸비한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 선덕여왕 왕릉에 다녀 온 후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사실, 드라마에서 '선덕여왕'이 방영되기 이전까지 개인적으로는 선덕여왕 이라는 인물에 대해
큰 흥미가 있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엿본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은 충분한 관심을 일으킬만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해서, 여차 여차 방문하게 된 경주에서 제일 먼저 찾아 본 곳 역시 선덕여왕의 왕릉이였다.

선덕여왕 왕릉은 경주 시내에서 약 1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인터넷 검색 내용을 접하고
경주 시내에서 무작정 차량에 탑재되어 있는 네비게이션에 "선덕여왕 릉" 을 검색하여 왕릉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 때와 마찬가지로, 선덕여왕 릉 역시 간단한 이정표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주차장이나 안내소, 관리인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꼬불 꼬불 산행을 해서 올라간 산 비탈에
겨우 주차를 한 후 오솔길을 통해 10여분 이상 등산?을 해서야 선덕여왕 릉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한참을 꼬불 꼬불한 오솔길을 걷다 보니 자기마한 이정표 하나가 보인다.


여기서 한참을 더 올라가다보니 이제는 변변한 길도 사라지고, 말 그대로 작은 뒷동산을 오르는 듯한
등산?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자그마한 선덕여왕 왕릉이 언뜻 언뜻 보이기 시작한다.
일반 왕릉에 비해 그 크기가 약간은 초라하다고 생각 될 만큼 규모가 작은 것이 인상적이였다.


관리야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곳 역시 '나정' 과 같이 사적지로써 개발이 잘 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변변한 표지판이나 안내 등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몹시 아쉬웠다.



Daum 사전을 찾아 본 바로 선덕여왕 릉은
사적 제182호로 무덤의 지름은 23.6m, 높이 6.8m. 사천왕사 위 낭산(狼山)에 있다.
봉토 밑에 둘레돌을 쌓은 원형봉토분이다. 둘레돌은 잡석으로 비스듬히 2단으로 쌓았고 밖으로 드문드문
둘레돌 높이와 비슷한 대석을 기대어놓았다. 그 밖에는 다른 표식의물이 없고 다만 전면에 상석이 설치되어 있으나
이것은 후대에 설치된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왕이 무병할 때에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모년 모월 모일에 죽을 터이니
나를 도리천(忉利天)에 묻으라
" 했다고 한다.

신하들이 그곳을 알지 못하여 어디냐고 물으니, 왕이 가로되 '낭산 남쪽'이라 했다.
그달 그날에 이르러 과연 왕이 죽자 낭산 남쪽에 장사지냈는데 그후 10여 년 뒤에 문무왕이 사천왕사를 왕릉 아래에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비로소 왕이 영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 미루어 볼때 드라마 상의 선덕여왕과도 마찬가지로 실제 선덕여왕은 지덕을 겸비한 훌륭한 인물이었음에는
분명했을 것이라는 생긱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그마한 봉분의 왕릉 역시 다른 거대한 어머어마하게 큰 왕릉과는 다르게 왠지 친밀감이
느껴지니 말이다. 아래 김유신 장군 묘(릉) 의 크기에 비교해 보아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