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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Door Life/후기 이야기

김유신 장군 묘를 다녀오고서.. 우직하며 성품이 바른 신라 최고 장군의 왕릉


경주에 가면 볼거리들이 참으로 많다.

이전 포스트를 통해 선덕여왕 왕릉과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에 다녀온 후기를 참고하면 좋을듯 하다.


이번에는 신라 최고의 장수였던 김유신 장군 묘에 다녀온 후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사실 선덕여왕 왕릉에 다녀오고서 적지않은 실망을 했던 참에 (왕릉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서) ,
김유신 장군의 모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왠걸? 꼬불 꼬불 등산을하며 산행을 했어야 했던 선덕여왕의 왕릉에 비해,
김유신 장군의 묘는 잘 포장되어 있는 도로와 주차장, 매표소와 서라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만들어진 관측소까지 아주 깔끔하게 관리가 되고 있었다. 주자비 무료. ^^



참고로 이 전망대는 동전을 넣어야지만 경주 시내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장비가 고장이 나서인지 동전을 넣지 않아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상태였다. (땡 잡았네.. ^^)


매표소를 지나  5분여 가량을 올라가면 김유신 장군의 묘를 볼 수 있다.


역시 선덕여왕의 왕릉보다 그 규모가 적지 않은 것을 알수 있는데,
이는 김유신 장군이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에 보이는 김유신 장군의 묘비는 언젠가 모 TV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적이 있는데,
아침에는 원래는 "릉"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던 비석을 시멘트 같은 것으로 채워 넣은 후 "묘" 라는 글씨로
바꾸었다고 한다.

언제 누가 무슨이유에서 이처럼 비석을 수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뜻하지 않게 밤과 낮에 볼때마다 "릉" , "묘" 글자가 번갈아가며 보인다고 하니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조선인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조상의 역사를 왜곡 하고자
이처럼 바뀐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온다.
역시 국가는 힘이 있어야...한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문무대왕릉을 다녀온 후기를 남겨볼까 한다.